오래 전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창립자이자 대표 과학자이기도 했던 빌 조이가 미국의 대표적인 기술 잡지인 와이어드 2000년 4월호에 발표한 “미래에 왜 우리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다가올 필연적인 재앙에 대해 언급하며, 그것이 우리 자신의 존재를 파괴할 수 있는 ‘악마의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능적인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그것들에게 자기 결정을 하도록 허용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까요? '터미네이터'와 같은 몇몇 SF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컴퓨터는 점점 총명해지고 인간이 그것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버린다면 특정 시스템이 인류의 생사를 좌우하는 암울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너무 극단적인, 말 그대로 영화와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인간이 시스템을 통제한다고 해도 과연 이와 같은 재앙을 피해 갈 수 있을까요? 17년에 걸친 폭탄 테러로 ‘유나바머(Unabomber)’라 일컬어진 시오도어 카진스키가 “잘못된 가능성이 있는 것은 잘못 된다”고 머피의 법칙을 말한 것처럼 정말 뜻밖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느낄 수 있듯이 컴퓨터 기술은 몇몇 특정 기업에 의해 종속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와 같이 극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통제되어 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 의해 짜인 어떤 구조화된 세계에서 조작된 안위를 누리는 것뿐일 수도 있습니다.
빌 조이는 “이런 상황에서 삶은 목적이 없는 것이 되고,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제거당하거나, 다른 형태로 조작되어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겠지만 자유롭지 못하고 가축이나 다를 바 없는 지위로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몇 해 전 큰 인기를 얻었던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를 살펴보죠. 여기서 우리는 가상현실의 최종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가상현실은 특정 분야에 응용이 아닌 전체 세계의 형태를 띱니다. 실제로 저명한 인공지능 학자인 레이 커츠와일 박사는 2030년이면 매트릭스처럼 현실과 식별할 수 없는 가상현실 기술이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때면 인간의 혈구보다 작은 로봇인 나노봇이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마치 웹을 서핑 하듯이 가상현실을 만끽할 수 있고, 영화처럼 케이블이 아닌 무선을 통해 가능해 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매트릭스에서 그려진 가상현실은 기계에 의해(혹은 특정한 누구에게) 지배당하는 암울한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 세계는 이미 모든 것이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으며, 그 속에서 주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스스로 무언가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 자체도 역시 짜여 진 각본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지만 어쩌면 지금의 사회도 어쩌면 그와 같은 매트릭스 세계일 수도 있고, 앞서 언급한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 따른 재앙을 이미 겪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매트릭스 세계의 인간들이 자신이 사는 곳이 가상현실임을 모르듯이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을 단지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쟝 보드리야르는 자신의 대표 저서인 “시뮬라이크와 시뮬라시옹”에서 현대 사회가 실재는 없고 이미지만이 넘쳐나는 세계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오늘날 모든 것이 미디어 형태를 띠고 모든 행동이 인공적으로 예상되는 사회이다. 우리는 테크닉과 사이버로 가득 찬 가상현실로 들어섰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에게 있어 현대 사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어떤 가상의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 되 버린다는 것입니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것처럼 이미 실제는 사라지고 가상현실(그의 표현을 빌자면 ‘초현실’이라는 의미의 ‘하이퍼리얼’)의 시대가 도래 했는지도 모릅니다.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 발전으로 인해 이미 컴퓨터화 되어 버린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세기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여러 철학자들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성 상실에 대해 경고를 했습니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시대를 대변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보면서 이런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빌 조이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우리들 각자는 자기 나름의 소중한 것들을 갖고 있다. 그것들에 대해 마음을 쓰면서 우리는 인간성의 본질을 확인한다. 궁극적으로 소중한 것들을 보살피고 아낄 수 있는 우리의 커다란 능력 때문에 나는 우리가 우리 앞에 닥친 위험한 문제들에 맞설 수 있으리라고 낙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