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의 80% 이상이 원래 계획했던 목표를 다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계획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프로젝트 일정이 늘어지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프로젝트 전체를 통째로 망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 곳에 속한 사람들은 또 어떠할까요? 지금까지 배워오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꼭 그렇게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수없이 좌절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 누구나 100% 만족하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없을 것입니다. 애널리스트나 아키텍트 입장에서 성공했다고 판단한 프로젝트라고 해도 개발자나 테스터 입장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 현업이나 고객 입장에서 본다면 성공의 기준은 더 모호해질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기술’보다 ‘사람’이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사람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 때문에 늘어나는 것은 담배와 술 그리고 몸무게뿐이라는 자조 섞인 지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소통(커뮤니케이션)이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MBOK Guide에서는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프로젝트 정보의 시의적절한 생성, 수집, 보급, 저장, 최종 분배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프로젝트 시작부터 끝나는 그 순간까지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PM Network 99년 8월호에서는 다음과 같은 프로젝트 커뮤니케이션 관리를 위한 5가지 단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5단계가 시간 소비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누구나 활용 가능한 훌륭한 툴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는 알아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1. 집중해서 들어라 2. 명확하게 생각하라 3. 자유롭게 토론하라 4. 감수성을 개발하라 5. 요구사항에 신속히 응대하라
IT 기술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개념과 문화들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핑크빛일까요?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 정체성은 과연 존재할까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계몽이란 신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즉, 중세 어둠의 세계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빛의 세계인 근대로 넘어가면서 인간이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몽이 진행됨에 따라 오히려 인류는 진정한 인간적인 상태에 들어서기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야만에 빠져든다고 지적했는데,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문화 산업의 야만성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문화가 자본주의의 논리와 결합되어 대다수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획일화시킨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컴퓨터 환경, 특히 PC 환경에서 이와 같은 계몽을 주도했던 것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습니다. 80년대 이후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발자와 사용자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가 금지되고, 동시에 IBM 호환 PC에 MS-DOS가 탑재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일반 사용자가 컴퓨터에 쉽게 접근하면서부터) 계몽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32비트와 GUI 그리고 인터넷 사용을 위한 자체 통신 기능을 내장한 윈도우 운영체제의 등장과 이후 운영체제 시장에서 확대된 윈도의 독점적 지위는 그동안 진행되어 온 계몽의 화룡정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는 새로운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전보다 더 강력하고 은밀한 형태의 야만성을 띄면서 인간을 통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신화화되어 나타나고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한 채 세뇌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개성이라는 것도 이 틀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나는 남들과 다르고 나만의 것을 찾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나만의 것일까요? 그들이 즐기는 문화가 과연 스스로 창조한 문화일까요? 아니면 온갖 매체를 통해 신화화되어 마치 그래야만 할 것 같고 그것이 마치 나만의 것처럼 느껴지는 문화는 아닐까요?
90년대 중반 이후 윈도 운영체제가 시장을 독점하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어떤 분은 “빌 게이츠가 마련해 준 선물에 만족하다가 어느 순간 그에게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린 사용자로서 스스로 무력함을 실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렇다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대세를 거스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윈도우를 필적할 만한 강력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대세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계몽의 변증법』에 나온 표현을 빌자면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자유다 너의 생명이건 재산이건 계속 네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이후 너는 우리들 사이에서 이방인이 될 것이다”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셈입니다.
컴퓨터 환경에서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이방인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무능력에 빠지거나 더 나아가 정신적인 무력증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이방인들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혹은 타협점을 찾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 사회가 개인에 가하는 폭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이방인'(알베르 카뮈 작품)의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을 했다는 것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무덤덤했다는 사실에 더 비난을 받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존 사회의 틀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늘 '새로운 것', '참신한 것', '기발한 것'을 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한 반복적인 형태에서만 가능합니다. 현대 사회의 인간이란 단지 자본주의 사회의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라는 메타 시스템 속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현대 사회의 바람은 문화라는 상품이 어떤 식으로 제작하여 포장하고, 어떤 마케팅 전략을 세워 선보여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이 어떤 식으로 소비되는가를 다시 분석하여 재생산할 것인가? 이러한 순환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제반의 모든 것들은 단지 수단에 불과합니다(생산의 수단이고 소비의 수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주체성'이란 끼어들 틈도 없습니다. 앞서 인용한 말처럼 이 시대의 주인은 육체를 자유롭게 놓아두는 대신 곧바로 영혼을 공략합니다. 새로운 형태의 암흑시대인 것입니다.
하버마스는 '계몽의 변증법'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계몽을 빙자한 광기의 시대(나치즘, 파시즘 같은)를 '부정'과 '비판'을 통해 보여줬지만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사진 설명> 1965년 하이델베르크에서 막스 호르크하이머 (앞쪽 왼편), 테오도어 아도르노 (앞쪽 오른편), 위르겐 하버마스(뒷쪽 오른편) -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