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린 데이의 장르가 '네오-펑크'라고 나옵니다. 사실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얼터네티브니 그런지니 모던 록이니 하는 장르들이 제가 듣기에는 다 비슷한지라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세세하게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왜 사람들은 뭔든지 세대를 분류하고 장르를 나누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쫓아가다 보면 음악 듣기가 더 부담스러워지지 않을까요).
(각설하고) 군대 제대 후 복학한 98년, 신춘문예 준비를 위해 잠시 집을 나와 작곡을 하던 친구 H와 그의 자취집에서 같이 지낸 적이 있습니다(사실 집을 나온 결정적인 이유는 심각한 불면증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 부모님이 상당히 불편해 하셨습니다). 그 친구 덕에 최근 것을 중심으로 한동안 듣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음악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그린 데이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들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그런 아마추어 밴드 정도로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단순하고 쉬운 코드 구성에 테크닉이라 할 것도 없는 연주, 게다가 싱거울 정도로 짧은 곡의 길이 등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그때까지도 음악을 듣는데 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멋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몇번 그들의 곡을 듣다보니 이와 같은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결정적으로 98년 이후 음악 취향이 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즐겨 듣던 복잡하고 난해한 프로그레시브 계열이나 뛰어난 연주력이 바탕이 되야 하는 블루스, 재즈 계열 음악(많이 듣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해하고 느끼기에 벅찬 장르들입니다)보다 조금 가볍고 쉬운 음악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기름기를 좀 뺐다고 해야 될까요? 그리고 그런 성향은 10년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구요.
이들 음악의 강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난다!'라는 것입니다(신나는 음악을 찾으라면 헤아릴 수 없겠지만 어찌됐건...). 평범한 기타 코드 몇 개 가지고 이렇게 어깨 들석이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곡을 만드는 것이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가식을 벗어던지 느낌이랄까요? 결국 그린 데이를 비롯해 몇몇 밴드의 곡을 들으면서 이 때를 기점으로 한동안 앞에 언급한 장르들의 음악을 주로 듣게 되었고, 지금도 가끔 들을때 마다 신난다는 느낌은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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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킹 헤즈를 잘 아는 사람이거나 음악 잡지에서 '록 명반 100선'하는 식의 기사를 보면 그들의 최고 명반으로 'Remain In Light'를 꼽습니다. 70년 말 펑크 록에서 80년대 뉴 웨이브로 넘어가는 신호탄 격인 앨범이라 평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 소개하는 'Little Creatures'를 선호합니다. 초등학생이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쟈켓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던 이 앨범은 고등학교 시절(91년)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입한 그들의 앨범이었습니다다. 또한 당시 국내에(제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발매된 토킹 헤즈의 앨범(LP로 발매된)이기도 했습니다.
'Speaking In Tongues' 이후 팝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이 앨범은 이전에 듣던 요란한(?) 펑크 록과 달리 뉴 웨이브의 흥겨운 느낌이 많이 듭니다. 특히 첫 곡인 'And She Was'는 토킹 헤즈의 특징을 잘 반영한 곡이라 생각하는데 지금도 기분이 '다운'됐을 때 그것을 다시 '업'시키기 위해 종종 듣곤 합니다.
참고로 토킹 헤즈의 곡을 들을 때 마다 강기영과 박현준을 중심으로 펑크를 기본으로 하면서 뉴웨이브, 락, 메탈을 혼합하여 선보여된 국내 밴드였던 삐삐 밴드(혹은 삐삐롱스타킹)가 떠오른곤 합니다. 특히 'Speaking In Tongues' 앨범에 수록된 'Burning Down The House'라는 곡의 기타 리프를 듣다보면 삐삐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박현준이 이를 따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록 음악사에서 60년대 주류쪽을 대표했던 밴드가 비틀즈였다면, 비주류쪽은 단연코 벨벳 언더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들이, 이후 록음악계 미친 영향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90년대 얼터네티브, 그런지, 모던 록 그리고 그 이전의 펑크 록 밴드까지 모두 벨벳 언더그라운드에게 두 손을 모아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입니다.
"따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들은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록 밴드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에 속할 만큼 여전히 즐겨듣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자주 찾았던 중고 레코드 전문점에서 우연히 그들의 첫 앨범인 'Velvet Underground & Nico(일명 바나나 앨범)'을 구입한 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아마도 팝 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이 매니징을 했다기에 궁금해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만해도 생소했던 그들의 몽환적이고 음울한 사운드에 (과장을 좀 한다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지요.
아무튼 제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처음 접할 때만 해도 록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주변 사람들도 이들의 존재를 아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생소한 밴드였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마도 '접속'이라는 영화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이 영화에는 지금 소개하는 그들의 세 번째 앨범에 수록된 'Pale Blue Eyes'가 삽입되어 영화와 더불어 인기를 끌었고, 특히 영화의 주인공과 첫 사랑을 연결해 주는 소품으로 이 앨범이 등장합니다.
사실 이 앨범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실험 정신을 주도했던 존 케일이 빠진 상태에서 제작한 것이기에 제가 들었던 이전 곡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앨범 중에 가장 편하게 들을 수 있을 만큼 전통적인 록 음악에 가까운 앨범이기도 합니다.
Candy Says와 Pale Blue Eyes 그리고 What Goes On과 Jesus 등을 한 번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당시에는 국내 음반 시장에 직배 체제로 바뀌는 과정이었기에 그동안 발매됐던 레드 제플린 음반들이 다 절판됐습니다. 따라서 사고 싶었던 LP를 구하는데 애로사항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결국 레드 제플린의 총 10장의 정규 앨범과 관련 자료를 모은데 꼬박 1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됐고, 그 기간동안 서울 시내에 다녀보지 않는 레코드 점이 없을 정도였습니다(그 덕에 다른 많은 좋은 음반들도 모았던 시기였습니다).
곡의 끝에 덧붙이는 부분으로 종결부를 뜻하는 CODA(1982)는 앨범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레드 제플린의 해체 후 그들의 미발표곡을 모은 마지막 앨범입니다.
60년대가 비틀즈의 시기라면 70년대는 레드 제플린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 잘 나가는(?) 록 밴드에게 '가장 존경하는 그룹'을 물어보면 항상 레드 제플린이 언급될 정도로 그들은 70년 대 이후의 하드록이나 메탈의 반면교사라 할 수 있지요.
'Moby Dick' 이후 존 본햄의 유일한 솔로 드럼 연주곡인 'Bonzo's Montreuk'와 그룹 초창기에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추구했던 블루스와 소울이 결합된 형태의 'I can't quit you baby'와 'We gonna Groove',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의 하드록 창법의 전범을 보여주었던 'Wearing and Tearing' 등 이 앨범을 통해 그들의 숨겨진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전 앨범 중에서 뺄수 있는 곡이 무엇이 있을까요? 레드 제플린의 전 앨범을 모두 Masterpiece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60년대 중반 이후 70년대 초까지 ‘록 르네상스’라고 불리며 급속도로 부흥했던 록 음악은 70년대 중반 이후 쇠퇴의 길에 접어듭니다. 베트남전의 종식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와해 등 그동안 전 세계를 지배했던 정치적인 냉각 상태가 완화되면서 록 음악계는 상당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회 상황과 사람들의 생활이 점점 안정되면서 대중들은 더 이상 이전의 머리 아픈(?) 음악을 거부합니다. 이제는 음악적 완성도와 예술성 그리고 체제 반항적이고 철학적 깊이를 지닌 가사는 전혀 쓸모없게 된 것입니다.
70년대 중반 이후 사람들의 기호는 점차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바뀌었고, 이전의 몬트리올 팝, 우드스톡을 거치면서 생긴 반전, 평화, 무정부주의 정신도 퇴색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70년 중반 이후의 디스코 열풍(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와 ‘그리스’의 히트로 비롯된)과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의 등장은 이런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기호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 옛날 영광을 누리던 아티스트들도 하나 둘씩 록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갑니다.
그렇다면 80년대는 어땠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록 음악의 종말을 고하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80년에 접어들면서 두 명의 ‘존’의 죽음은 이런 록 음악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다른 한명의 존인 존 레논도 사망합니다. 60년대 록 르네상스의 신호탄이었던 비틀즈의 핵심 멤버로 60년 말 해체 이후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을 목말라 했던 대중은 70년 내내 그들의 재결합설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비틀즈의 환상은 끝나고 맙니다. 이렇게 두 명의 존의 죽음은 록 르네상스의 양대 상징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으로 록이 암흑 속으로 향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들이었습니다.
물론 옛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Clash나 섹스 피스톨즈와 같은 펑크 록(후에 얼터네티브 록의 시조격인) 밴드들이 다시 한 번 록의 부활을 시도하지만, 일부에게만 마니아적 반응을 일으켰을 뿐이었습니다. 80년대는 디스코와 팝(이지리스닝 계열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그리고 영상미디어와의 결합으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이 시기에 프로그레시브는 그 특성상 이미 새로운 주류에 직격탄을 제일 먼저 맞았던 장르입니다. 프로그레시브는 록 음악에서도 더더욱 음악성을 중시하고 난해하며, 가사 또한 매우 철학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일반 대중들의 관점에서는 제일 지루하고 어려운 음악으로 인식됐을 것입니다. 그래도 80년 초까지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 핑크 플로이드가 아직 건재했습니다. 그들은 79년 ‘THE WALL’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고 보기 드문 히트를 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후 건반주자인 리차드 라이트가 빠진 채 ‘FINAL CUT’을 발매하고 그룹의 리더인 로저 워터스가 탈퇴함으로서 앨범명과 같이 자신의 그룹은 물론이거니와 전체 프로그레시브 록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게 됩니다. 즉, 프로그레시브의 대의명분을 유지했던 마지막 그룹이 끝을 맺은 것이지요.
흔히 1960년대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록 음악계를 ‘록 르네상스 시대’라고 합니다. 한 록 음악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앨범을 고를 필요가 없다"라고 할 정도로 당시의 록 음악은 록큰롤을 뛰어넘어 재즈, 블루스, 포크, 클래식과 인도음악, 사이키델릭(아방가르드), 하드록 등 새로운 음악 장르들이 출현, 접목됐으며 점차 록 음악은 풍부해지기 시작했던 시기였지요.
이런 록 음악사에 있어 60년대는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의 출발을 예고합니다. 그것은 프로그레시브와 아트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입니다. 1965년 영국에서 무디 블루스라는 밴드는 키보드(신디사이저)와 멜로트론이란 악기를 전면으로 내세워 이전과 다른 색다른 음악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이후 1968년과 69년 사이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제쓰로 툴, 에머슨 레이크 앤 팔머(E.L.P) 등 여러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이 영국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기타와 드럼위주의 리드미컬한 록 음악들과 달리 매우 환상적이고 난해한 음악 형식을 선보였고, 사이키델릭, 클래식 등 여러 장르와의 접목 그리고 파격적인 실험정신으로 무장했습니다. 가사에 있어서도 철학적이고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기 시작했지요. 그들은 대중적인 것을 거부하고 록 음악, 대중음악의 예술화, 철학화의 선봉을 서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몇몇 그룹을 제외하고는 메인스트림으로 나가지 못하고 언더그라운드에 묻히지만 이들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영향은 이후 이웃나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으로 전파되어 다른 록 음악과 구별되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안내해 줍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득하지만 90년대 초중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중엔 (그것이 겉멋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심야라디오 방송을 통해 처음 접한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에 심취했던 마니아들이 참 많았습니다.
1960년대 록 음악은 새로운 변혁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등에 의해 록큰롤 음악이 태동한 이후 록 음악은 당시 기성세대의 문화에 반항적인 미국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즉, 록큰롤은 말 뜻 그대로 마치 “돌이 구르는 듯”이 경쾌하고 강렬한 사운드로 새로운 대중문화의 꽃으로 부흥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 형식이었고, 록 음악은 예술성을 떠나 하나의 혁명적 신호탄이 되었습니다(당시까지 음악이란 고전적 클래식이나 흑인 사회에서 주도됐던 재즈 혹은 블루스 음악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재즈나 블루스는 그 성격상 대중화되지 못했고 당시에는 흑인들의 억압적인 정서를 담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록 음악은 단순했고, 어찌 보면 저급해 보였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경우는 뮤지션/아티스트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한계를 지닌 것 또한 사실이었지요. 그 후 1960년대로 넘어 오면서, 록 음악은 종주국 미국이 아닌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새로운 변혁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된 “비틀즈”라는 애띤 혁명아들은 이제까지의 록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며 종주국인 미국을 침범하게 됩니다. 또한 비틀즈를 필두로 한 일련의 영국 그룹들의 등장은 록 음악의 판도의 일대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특히 그들의 미국 진출(이를 흔히 ‘British Invasion’이라 하여 영국그룹들의 미국 시장의 잠식을 의미합니다)은 미국 록 음악계의 위기감을 조성했고, 이제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적 경쟁 체제로 접어들게 됩니다.
비틀즈는 매 앨범마다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선보였고, 이에 젊은이들은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런 독보적인 그룹 앞에 굴복하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됐지요. 아무튼 비틀즈와 이에 대항한 이들과의 보이지 않은 경쟁은 록 음악의 단순한 형식과 저급성을 탈피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됐고, 록 음악의 다양한 장르화를 이룰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1960년 말, 비틀즈 해체 전후에는 비틀즈의 음악성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록 음악계에서 생존할 수 없었고, 록 음악인들은 이제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게으를 피울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렇게 최초의 아티스트라 부를 수 있는 비틀즈 이후 이제는 엔터테이너로서 록 음악인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새롭게 재탄생하게 됩니다.
결국 90년 중반 이후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애써 음악을 찾아 들으려고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이전에 들었던 음악을 가끔 듣는 정도라고 해야 될까? 덕분에 음악에 대한 감각도 많이 둔해진 듯 하다. 이전에는 웬만한 음악을 들으면 누가 연주한 무슨 곡인지 거의 알았다. 또한 음악을 많이 듣다보면 어느 순간 장르와 악기별로 구분되어 들리면서 다른 곡들과 비교하게 되고 이것은 나름대로 쾌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멜로디만 익숙할 뿐 누구의 어떤 곡인지도 모르겠고, 비교는커녕 장르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게다가 90년대 중반 이후의 곡들은 뭐가 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우가 후회스럽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르게 생각해 보면) 겉멋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처럼 누구의 어떤 곡인지 척척 알아맞히고, 장르나 악기별 곡의 특성을 줄줄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멋있어 보이기는 하다. 그리고 음악을 보다 잘 감상하고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마찬가지다) 권위 혹은 고급문화의 의지다. 몇몇 잘 나가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 좋다고 여기는 것이다. 대부분 거기에는 왜, 어떻게 좋은지는 없고, 현란한 수식어와 문체만 남발되는 경우가 많다(그네들도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소개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게다가 오역까지 덧붙혀지면 더 가관이다).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설혹 자기에게 안 맞더라도 잘난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자신의 함량 미달을 탓하거나, 본인 또한 남들 보다 우월하다(고급문화에 젖어있다는)는 생각에 우쭐해 한다.
한때 국내에서 프로그레시브나 재즈가 유행할 때 나는 이게 왜 유행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어떤 장르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프라스트럭처가 형성된 후 그것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혀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듣는 사람은 많아졌다고 하는데 여전히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배고프고 우울할 수밖에. 90년 중반 H2O라는 밴드의 다음과 같은 가사가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고 있는 그들의 현실이 아닐까?
우리가 걷는 길은 행복한 길일까? 이런 말 이해 하니?
- ‘고백을 하고’ 중에서
언제부터 우리 이다지도 막연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야만 했을까 - ‘나를 돌아보게 해’ 중에서
아무튼 근 몇년간 음악을 듣는 데 있어 편견은 없어진 것 같다. 물론 우월감이나 자만심 같은 것도 (조금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없다. 그리고 이제는 애써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언제가 산울림의 김창완은 한 잡지 인터뷰에서 “모르는 건 모르는 채로 가슴에 담아둬라. 알려고 노력한다고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언가를 알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있다. 그냥 편한하게 음악을 대하자. 좋고 나쁨, 고급과 저급을 구분짓지 말자.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나는 다음의 조건만 맞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음악을 듣고 행복하나요?'
오늘 아침 잊고 있었던 Uriah Heep의 'July Morning'이 생각났다. 'Rain'가 더불어 좋아했던 곡이었는데 7월은 장마도 있고 하니 이 두 곡을 많이 들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초창기 딥 퍼플의 존 로드와 더불어 켄 헤슬리의 키보드 연주는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다른 록 밴드와 달리 기타를 압도했던 것 같다. 혹자는 믹 박스의 기타 실력이 워낙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켄 헤슬리가 전면으로 나섰다는 말도 있다(믿거나 말거나). 7월의 시작,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좋은 시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곡으로 위안을 삼아보고자 한다.
한때 창간호 부터 모았던 '핫뮤직'이라는 음악 잡지가 있었다. 최근 이 잡지에서 실린 록 앨범 150선 기사를 보고 이 앨범들을 MP3로 모아야 겠다는 시도를 했다(지금까지 한 20 앨범 모았나?).
아무튼 이런 시도 덕에 4년만에 다시 듣게되는 앨범이 바로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97)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첫 앨범인 Pablo Honey(93)에 실린 Creep을 선호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을 가장 좋아한다(사실 Pablo Honey에는 Creep이외에 들을만한 음악이 별로 없다).
비오는 날 밤 외사랑에 가슴 아퍼하면서 워크맨으로 Let down, Karma Police, No Surprises 등의 곡을 들었던 5년전의 추억들이 다시 한번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고 할까? 내가 이 음악을 듣고 있던 그 밤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사랑이 죽음을 강요할 때 가 더러 있다. 그러나그때에도 사랑 그 자체 이외에는 정당화의 길이 없다. 한 존재를 하는 것이 결국은 다른 모든 존재들을 죽이는 것이 되는 어떤 극한적인 경우도 있다. 어느 면에서 보면 개인적이고 절대적인 죄의식이 없는 사랑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그 죄의식은 고독한 것이다. 이성적인 알리바이가 없는 그 죄의식은 무거운 짐이다. 사랑을 하느냐 마느냐를 오직 혼자서만 결정해야 하고, 진정한 사랑의 저 헤아릴 길 없는 결과에 혼자서 대응해야 한다. 그런 모험적인 고독보다는 사람들은 미지근한 마음과 윤리를 선호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두려워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을 거부하면서 자기 도피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으뜸가는 관심사는 죄의식의 무게를 다소나마 덜어줄 어떤 구실을 찾는 일이다. " - 알베르 카뮈
- 이렇게 '2003년 5월 13일' 저의 블로그 라이프가 시작됐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