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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1) - 부조리한 감수성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2) - 행복한 프로메테우스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3) - 거인의 어깨위에 서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개발자분은 지난 컴퓨팅 역사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웹의 출현과 같은 사건은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기존 패러다임의 연장을 기반으로 한 예측은 항상 틀렸다. 상황은 고정적이지 않으며 격렬한 경쟁과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 사이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개발자들은 어느 정도의 낙관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객체지향의 아버지이자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스몰토크’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든 앨런 케이의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말 멋진 말이지 않나요? 가끔 아는 개발자분들을 만나 개발자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꼭 이 말을 언급하곤 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인간의 본질이 결정돼 있다면 개인은 다만 그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되겠죠. 만일 개발자로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개발해야 한다면, 이와 같이 결정에 따라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은 결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각적인 생활방식이 중요합니다. 여기서부터 개발자에겐 “자유”가 주워집니다. 이것은 축복 받은 선물이면서도 반대로 무거운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실과 개발자의 자유는 늘 상충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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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넘어 미래를 직접 만드는 개발자’란 무엇일까요? (이전 글에서도 강조했지만) 그것은 바로 자유로운 정신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창조하는 개발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소수일 것입니다. 대부분은 현실적인 결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오랜 전부터 한국 개발자의 정년이 35세라고 회자화되는 것은 단지 정신적이나 체력적 한계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왜곡된 국내 개발 현실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부조리한 감수성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개발자들은 일정 수준의 나이가 되면 더 이상 개발자로 남지 않고, 보다 안정적인 관리자의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개발자로 남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결하면서도 드물기 마련입니다.

만약 생계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 내부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일본의 지하철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평소에 만원인 지하철에 늘 불만이었던 승객들이 어는 날 그 지하철 회사의 주식을 사게 되면서 지하철이 만원일 때마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 지하철의 승객들은 수동적인 노예에 상태였지만 지금은 주인으로서 능동적인 상태 전환됐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그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개발자로 살아가는데 있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냅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뒤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습니다.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고, 여기서부터 인류의 불행이 비롯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판도라 상자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이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불행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로서 살아가는 이유와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중요한 신화의 한토막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이라는 주제로 4회에 걸쳐 여러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단상’의 사전적 의미처럼 정말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을 풀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개발자로서 삶을 살아야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하는 물음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은 한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백 마디 말이나 주장보다 개발자 각자가 찾은 답을 갖고 실천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개발자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봤던 짧은 경구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인생은 짧고 우리가 하지 않는 소중한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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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1) - 부조리한 감수성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2) - 행복한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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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을 쓰면서 어쩌면 한국 개발자들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내 IT 환경에서, 특히 SI 중심의 SW 환경에서 개발자들이 처한 현실을 본다면 ‘노예’라고 표현한 것이 결코 틀린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그들은 항상 주요 의사결정에 배제되어 왔고, 처우나 대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며, 새롭게 포장된 기술에 허덕이면서 도대체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목격하고 겪으면서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드뭅니다. 예를 들어 한때 IT 개발자들이 연합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지는 못한 듯 했고, 개발자 커뮤니티나 오픈소스 프로젝트도 소수의 몇몇이 애를 쓰고 있지만 발전적인 형태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개발자나 IT 업계의 약자를 위한 시민단체와 같은 이익단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개발자들 스스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공사판에 속한 막노동자로 자신을 비약하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이전에 어느 개발자 블로그에 올라온 카툰을 본적이 있습니다. 새벽 노동시장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고, 고용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드럼통에 불을 째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바 2명!”이라고 외치는 모습입니다. 이 한 컷의 카툰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조리한 현실보다 이러한 현실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버려는 두는, 혹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상황. 그것이 현실보다 더한 개발자의 슬픔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한편에서는 실력 없이 대우만 잘 받으려는 개발자와 자기계발에 대한 의지가 없는 개발자도 의외로 많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 역량을 키우는 일임에도 힘들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개발자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는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단지 돈 때문에 일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인 질 들뢰즈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갖고 있고, 그 역량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삶의 기쁨은 그 역량이 커지는 느낌이고 슬픔은 그 역량이 작아지는 느낌이다"라며, "창조란 무엇보다도 '기쁜 삶의 창조'이다. 그리고 창조는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저는 개발자로서의 기쁜 삶을 위해 어떤 식이로든 자기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 자신을 속박하는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서, 단순하게 코딩만을 하는 테크니컬 노동자가 아닌 자유롭고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창조자로서 개발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들뢰즈가 말한 기쁨은 결코 물질적인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사람들이 '기쁜 삶'을 영위해 나가고, 또한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또 다른 기쁜 삶을 창조할 때가 바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오래 전에 만났던 한 유명한 개발자 한 분은 몇 날 며칠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문제를 어느 순간 해결했을 때 가슴 속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주체할 수 희열 때문에 동네를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유레카'를 외치면서 로마 시내를 벌거벗고 뛰었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지요.

물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Java를 만든 제임스 고슬링은 어느 강연에서 한 참석자가 "Java를 배우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저는 당신이 그렇게 어렵다고 느끼는 Java를 개발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매일 같이 느끼는 새롭고 놀랄만한 기술들은 사실 기존에 정립한 개념과 기술에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앞선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편리한 환경에서 개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는 행운아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좀 더 멀리 볼 수 있다면 이는 단지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 아이작 뉴튼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혜택 받은 자임을 생각해야 하고, 그 어깨가 생기기까지의 과정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면 새로운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창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그렇다고 쉽다거나 만만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의 역할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거인의 어깨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미래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개발자로서 자신감과 자존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를 여는 열쇠는 찾는 자의 몫입니다. 미래의 키 메이커는 바로 나이자 동시에 우리입니다.

* 글을 다 쓴 후 포스팅하기 직전 서두에 언급한 ‘노예’라는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전체적인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결코 현재의 개발자들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 아닙니다. 단지 이번 글을 쓰면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떠올라 그 개념을 좀 차용해 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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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국 개발자를 위한 단상(1) - 부조리한 감수성]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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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개발자가 느끼는 부조리한 감수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3회에 걸처 말하고자 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여기서는 현실적인 해결 방안보다 개발자가 갖춰야할 태도에 더 집중했기에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조리한 감수성의 심각한 점은 그것이 오래 지속되면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적였던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일컬은 ‘절망’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개발자에게 있어 절망이란 단적으로 말하면 ‘개발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 또한 IT 업계에 종사하면서 뛰어난 재능과 능력이 있음에도 스스로 개발자의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떠난 이들을 종종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어떤 결정적인 이유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메테우스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주신인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줬고, 이로 인해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돼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 또한 부조리한 감수성을 느낀 존재입니다. 그의 간을 쪼여 먹는 독수리는 부조리한 현실이고, 포박 당한 쇠사슬은 존재 이유(개발자에겐 개발자로서 삶의 이유일 것입니다)의 부재입니다.
  
저는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개발자로서 겪는 부조리한 현실과 감수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겪은 반복되는 고통은 그가 신에게 등을 돌리고 인간 편에 서서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쳐줬다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프로메테우스의 첫 번째 상징인 ‘휴머니즘’이 있었습니다.

개발자 또한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요? 밤샘과 야근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현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개발에 대한 열정을 갖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러한 고통에는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개발자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단순히 회사에서 주어진 일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개발자가 평소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형상화되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이롭게 쓰인다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개발자가 느끼는 고통조차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개발자들이 만드는 프로그램(Program)의 Pro는 '미리, 먼저(before)"라는 의미이고, gram은 '쓰다(write)‘를 뜻한다고 합니다. 어원적으로 ‘미리 쓰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공교롭게도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저는 개발자로서 ‘살아야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물음의 대한 1차적인 해답은 행복한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즉, 리눅스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저는 행복한 프로메테우스로서 개발자의 행복한 모습을 봅니다.

"Just for fun(단지 재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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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개발자들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통해 공론화 되어 왔습니다. 잦은 야근과 밤샘, 열악한 처우, 영세성에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SW 업계, 이공계 기피 현상, 잘못된 개발환경과 관행, 개발자들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 등 그동안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고, 나름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도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문제들은 현재진행형이며, 몇몇 개발자 커뮤니티나 블로그를 살펴보면 앞으로가 마냥 핑크빛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기보다 국내 개발자들이 처한 현실 자체가 엉킨 실타래처럼 풀기 어렵고, 오히려 풀려고 할수록 더 엉키는 형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국 개발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문제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언급됐기에 새삼스레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서는 개발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보다 그로 인해 개발자가 느끼게 되는 ‘부조리한 감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개발자라는 한 개인이 품은 생각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곧 다른 사람들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동일하게 느낀다. 그것이 바로 보편이라 불리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기에 앞서 개인의 문제를 조명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속에서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해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여기서 말하는 ‘부조리’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전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다’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는 국내 개발자들이 처한 현실은 이런 사전적 의미에서의 부조리한 현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조리한 감수성은 조금 다릅니다. 그것은 (좀 어려운 표현이지만) 실존철학에서 말하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아무튼 개발자가 느끼는 부조리한 감수성은 매우 다양합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몇몇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부조리한 감수성은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문제가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어려움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이라든가, 이성이나 가족 문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 정체성의 부재 등 한 개인으로서 겪는 개발자의 고민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히려 흔히 말하는 사회적인 문제보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사소한 것이 개발자로 살아가는데 더 큰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문제는 공론화되고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적 차원의 문제는 아무도 알 수도 없으며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도 밝힐 수 없는 남모를 고민과 고통은 누구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인 문제는 오직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중에서

이 말은 개발자에게도 선행돼야 할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외의 것들, 예들 들어 개발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Java를 배울지 C를 배울지, 개발자의 존재는 무엇인가 등의 물음은 나중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먼저 삶의 가치로서 개발자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즉, 개발자로서 과연 살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K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벤처 회사의 개발자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면서 회사에 출근한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 출근하는 동안에도 다음 주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프로젝트 생각으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어젯밤도 어제 해결 못한 문제를 고민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샜다.
한편으로는 애인과 헤어질 것 같아 걱정이다. 잦은 밤샘과 늦은 퇴근, 휴일도 반납하면서까지 일 한지 벌써 몇 개월. 데이트할 시간조차 없다. 애인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물론 처음에는 애인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했지만, 지금은 점점 지쳐 같은 것 같았다. 벌써 전화로 심하게 다투기를 여러 번.
출근 후 며칠째 반복하고 있는 디버깅 작업을 한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다. 사장은 언제나 "이 프로젝트만 무사히 마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고 고생하자" 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하지만 그는 회사가 잘되고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른다. 단지 월급이나마 꼬박 나왔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그래야만 어려운 집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다시 그는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앞의 글은 개발자의 여러 일상을 ‘K’이라는 인물을 통해 짧게 구성해 본 것입니다. 개발자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상을 지탱해준 것은 '습관'입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코딩과 디버깅 작업, 이러 저러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 그것은 마치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와 세수를 하는 습관처럼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똑같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왜 내가 개발자로 살아가야 되지?’라는 의문에 봉착합니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프로그래밍이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내게 닥친 현실이 어려워도 나름대로 견딜 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순간 그는 현실과 단절된 상태에 빠집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으며, 심지어 자신의 존재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이 드는 순간이 바로 ‘부조리한 감수성’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계속)

* 참고로 여기서 중요하게 언급한 ‘부조리한 감수성’에 대한 내용은 프랑스 작가이자 사상가인 알베르 카뮈의 유명한 저서 ‘시지프 신화’를 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 또한 그 책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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