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킹 헤즈를 잘 아는 사람이거나 음악 잡지에서 '록 명반 100선'하는 식의 기사를 보면 그들의 최고 명반으로 'Remain In Light'를 꼽습니다. 70년 말 펑크 록에서 80년대 뉴 웨이브로 넘어가는 신호탄 격인 앨범이라 평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 소개하는 'Little Creatures'를 선호합니다. 초등학생이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쟈켓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던 이 앨범은 고등학교 시절(91년)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입한 그들의 앨범이었습니다다. 또한 당시 국내에(제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발매된 토킹 헤즈의 앨범(LP로 발매된)이기도 했습니다.
'Speaking In Tongues' 이후 팝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이 앨범은 이전에 듣던 요란한(?) 펑크 록과 달리 뉴 웨이브의 흥겨운 느낌이 많이 듭니다. 특히 첫 곡인 'And She Was'는 토킹 헤즈의 특징을 잘 반영한 곡이라 생각하는데 지금도 기분이 '다운'됐을 때 그것을 다시 '업'시키기 위해 종종 듣곤 합니다.
참고로 토킹 헤즈의 곡을 들을 때 마다 강기영과 박현준을 중심으로 펑크를 기본으로 하면서 뉴웨이브, 락, 메탈을 혼합하여 선보여된 국내 밴드였던 삐삐 밴드(혹은 삐삐롱스타킹)가 떠오른곤 합니다. 특히 'Speaking In Tongues' 앨범에 수록된 'Burning Down The House'라는 곡의 기타 리프를 듣다보면 삐삐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박현준이 이를 따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60년대 중반 이후 70년대 초까지 ‘록 르네상스’라고 불리며 급속도로 부흥했던 록 음악은 70년대 중반 이후 쇠퇴의 길에 접어듭니다. 베트남전의 종식과 냉전 이데올로기의 와해 등 그동안 전 세계를 지배했던 정치적인 냉각 상태가 완화되면서 록 음악계는 상당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회 상황과 사람들의 생활이 점점 안정되면서 대중들은 더 이상 이전의 머리 아픈(?) 음악을 거부합니다. 이제는 음악적 완성도와 예술성 그리고 체제 반항적이고 철학적 깊이를 지닌 가사는 전혀 쓸모없게 된 것입니다.
70년대 중반 이후 사람들의 기호는 점차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으로 바뀌었고, 이전의 몬트리올 팝, 우드스톡을 거치면서 생긴 반전, 평화, 무정부주의 정신도 퇴색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70년 중반 이후의 디스코 열풍(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와 ‘그리스’의 히트로 비롯된)과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의 등장은 이런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기호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 옛날 영광을 누리던 아티스트들도 하나 둘씩 록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 갑니다.
그렇다면 80년대는 어땠을까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록 음악의 종말을 고하는 시기였습니다. 특히 80년에 접어들면서 두 명의 ‘존’의 죽음은 이런 록 음악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60년 말에 결성되어 70년대 전반에 걸쳐 풍미한 레드 제플린은 블루스와 소울(이 밴드의 전신인 야드버즈의 음악성을 바탕으로)을 혼합한 형태의 음악으로 출발해 매 앨범마다 획기적인 시도로 록 르네상스 시기를 이끈 대표적인 밴드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80년 드러머였던 존 본햄의 죽음으로 인해 10여년 넘게 찬란하게 비행했던 제플린 호가 추락하고 맙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다른 한명의 존인 존 레논도 사망합니다. 60년대 록 르네상스의 신호탄이었던 비틀즈의 핵심 멤버로 60년 말 해체 이후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을 목말라 했던 대중은 70년 내내 그들의 재결합설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비틀즈의 환상은 끝나고 맙니다. 이렇게 두 명의 존의 죽음은 록 르네상스의 양대 상징의 몰락을 보여주는 것으로 록이 암흑 속으로 향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들이었습니다.
물론 옛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Clash나 섹스 피스톨즈와 같은 펑크 록(후에 얼터네티브 록의 시조격인) 밴드들이 다시 한 번 록의 부활을 시도하지만, 일부에게만 마니아적 반응을 일으켰을 뿐이었습니다. 80년대는 디스코와 팝(이지리스닝 계열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그리고 영상미디어와의 결합으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이 시기에 프로그레시브는 그 특성상 이미 새로운 주류에 직격탄을 제일 먼저 맞았던 장르입니다. 프로그레시브는 록 음악에서도 더더욱 음악성을 중시하고 난해하며, 가사 또한 매우 철학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일반 대중들의 관점에서는 제일 지루하고 어려운 음악으로 인식됐을 것입니다. 그래도 80년 초까지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 핑크 플로이드가 아직 건재했습니다. 그들은 79년 ‘THE WALL’이라는 앨범을 발매하고 보기 드문 히트를 치게 됩니다. 하지만 그 후 건반주자인 리차드 라이트가 빠진 채 ‘FINAL CUT’을 발매하고 그룹의 리더인 로저 워터스가 탈퇴함으로서 앨범명과 같이 자신의 그룹은 물론이거니와 전체 프로그레시브 록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게 됩니다. 즉, 프로그레시브의 대의명분을 유지했던 마지막 그룹이 끝을 맺은 것이지요.
흔히 1960년대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록 음악계를 ‘록 르네상스 시대’라고 합니다. 한 록 음악 평론가의 말을 빌자면 "앨범을 고를 필요가 없다"라고 할 정도로 당시의 록 음악은 록큰롤을 뛰어넘어 재즈, 블루스, 포크, 클래식과 인도음악, 사이키델릭(아방가르드), 하드록 등 새로운 음악 장르들이 출현, 접목됐으며 점차 록 음악은 풍부해지기 시작했던 시기였지요.
이런 록 음악사에 있어 60년대는 또 다른 새로운 음악의 출발을 예고합니다. 그것은 프로그레시브와 아트록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입니다. 1965년 영국에서 무디 블루스라는 밴드는 키보드(신디사이저)와 멜로트론이란 악기를 전면으로 내세워 이전과 다른 색다른 음악을 선보입니다. 그리고 이후 1968년과 69년 사이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제쓰로 툴, 에머슨 레이크 앤 팔머(E.L.P) 등 여러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이 영국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기타와 드럼위주의 리드미컬한 록 음악들과 달리 매우 환상적이고 난해한 음악 형식을 선보였고, 사이키델릭, 클래식 등 여러 장르와의 접목 그리고 파격적인 실험정신으로 무장했습니다. 가사에 있어서도 철학적이고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기 시작했지요. 그들은 대중적인 것을 거부하고 록 음악, 대중음악의 예술화, 철학화의 선봉을 서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몇몇 그룹을 제외하고는 메인스트림으로 나가지 못하고 언더그라운드에 묻히지만 이들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의 영향은 이후 이웃나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으로 전파되어 다른 록 음악과 구별되는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안내해 줍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아득하지만 90년대 초중반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 중엔 (그것이 겉멋이었든 아니었든 간에) 심야라디오 방송을 통해 처음 접한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에 심취했던 마니아들이 참 많았습니다.
1960년대 록 음악은 새로운 변혁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 척 베리 등에 의해 록큰롤 음악이 태동한 이후 록 음악은 당시 기성세대의 문화에 반항적인 미국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즉, 록큰롤은 말 뜻 그대로 마치 “돌이 구르는 듯”이 경쾌하고 강렬한 사운드로 새로운 대중문화의 꽃으로 부흥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이제까지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음악 형식이었고, 록 음악은 예술성을 떠나 하나의 혁명적 신호탄이 되었습니다(당시까지 음악이란 고전적 클래식이나 흑인 사회에서 주도됐던 재즈 혹은 블루스 음악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재즈나 블루스는 그 성격상 대중화되지 못했고 당시에는 흑인들의 억압적인 정서를 담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록 음악은 단순했고, 어찌 보면 저급해 보였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경우는 뮤지션/아티스트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한계를 지닌 것 또한 사실이었지요. 그 후 1960년대로 넘어 오면서, 록 음악은 종주국 미국이 아닌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새로운 변혁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된 “비틀즈”라는 애띤 혁명아들은 이제까지의 록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며 종주국인 미국을 침범하게 됩니다. 또한 비틀즈를 필두로 한 일련의 영국 그룹들의 등장은 록 음악의 판도의 일대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특히 그들의 미국 진출(이를 흔히 ‘British Invasion’이라 하여 영국그룹들의 미국 시장의 잠식을 의미합니다)은 미국 록 음악계의 위기감을 조성했고, 이제는 살아남기 위한 생존적 경쟁 체제로 접어들게 됩니다.
비틀즈는 매 앨범마다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선보였고, 이에 젊은이들은 열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이런 독보적인 그룹 앞에 굴복하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됐지요. 아무튼 비틀즈와 이에 대항한 이들과의 보이지 않은 경쟁은 록 음악의 단순한 형식과 저급성을 탈피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됐고, 록 음악의 다양한 장르화를 이룰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1960년 말, 비틀즈 해체 전후에는 비틀즈의 음악성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록 음악계에서 생존할 수 없었고, 록 음악인들은 이제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게으를 피울 수가 없게 됐습니다. 이렇게 최초의 아티스트라 부를 수 있는 비틀즈 이후 이제는 엔터테이너로서 록 음악인이 아닌 아티스트로서 새롭게 재탄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