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린 데이의 장르가 '네오-펑크'라고 나옵니다. 사실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얼터네티브니 그런지니 모던 록이니 하는 장르들이 제가 듣기에는 다 비슷한지라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세세하게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왜 사람들은 뭔든지 세대를 분류하고 장르를 나누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쫓아가다 보면 음악 듣기가 더 부담스러워지지 않을까요).
(각설하고) 군대 제대 후 복학한 98년, 신춘문예 준비를 위해 잠시 집을 나와 작곡을 하던 친구 H와 그의 자취집에서 같이 지낸 적이 있습니다(사실 집을 나온 결정적인 이유는 심각한 불면증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 부모님이 상당히 불편해 하셨습니다). 그 친구 덕에 최근 것을 중심으로 한동안 듣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음악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그린 데이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들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그런 아마추어 밴드 정도로 생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단순하고 쉬운 코드 구성에 테크닉이라 할 것도 없는 연주, 게다가 싱거울 정도로 짧은 곡의 길이 등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그때까지도 음악을 듣는데 있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겉멋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몇번 그들의 곡을 듣다보니 이와 같은 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결정적으로 98년 이후 음악 취향이 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즐겨 듣던 복잡하고 난해한 프로그레시브 계열이나 뛰어난 연주력이 바탕이 되야 하는 블루스, 재즈 계열 음악(많이 듣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이해하고 느끼기에 벅찬 장르들입니다)보다 조금 가볍고 쉬운 음악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기름기를 좀 뺐다고 해야 될까요? 그리고 그런 성향은 10년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구요.
이들 음악의 강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신난다!'라는 것입니다(신나는 음악을 찾으라면 헤아릴 수 없겠지만 어찌됐건...). 평범한 기타 코드 몇 개 가지고 이렇게 어깨 들석이고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는 곡을 만드는 것이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가식을 벗어던지 느낌이랄까요? 결국 그린 데이를 비롯해 몇몇 밴드의 곡을 들으면서 이 때를 기점으로 한동안 앞에 언급한 장르들의 음악을 주로 듣게 되었고, 지금도 가끔 들을때 마다 신난다는 느낌은 변함이 없습니다.
'Masterpiece'에 해당되는 글 6건
- 2008/07/23 [Masterpiece] 그린 데이의 Dookie
- 2008/07/01 [Masterpiece] 토킹 헤즈의 Little Creatures
- 2008/03/04 [Masterpiece]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벨벳 언더그라운드
- 2008/02/01 [Masterpiece] 레드 제플린의 CODA (1)
- 2008/01/17 [Masterpiec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1)
- 2008/01/14 [Masterpiece] 물랭루즈에서, 툴루즈 로트렉
토킹 헤즈를 잘 아는 사람이거나 음악 잡지에서 '록 명반 100선'하는 식의 기사를 보면 그들의 최고 명반으로 'Remain In Light'를 꼽습니다. 70년 말 펑크 록에서 80년대 뉴 웨이브로 넘어가는 신호탄 격인 앨범이라 평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 소개하는 'Little Creatures'를 선호합니다. 초등학생이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쟈켓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던 이 앨범은 고등학교 시절(91년) 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입한 그들의 앨범이었습니다다. 또한 당시 국내에(제가 알기로는) 유일하게 발매된 토킹 헤즈의 앨범(LP로 발매된)이기도 했습니다.
'Speaking In Tongues' 이후 팝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이 앨범은 이전에 듣던 요란한(?) 펑크 록과 달리 뉴 웨이브의 흥겨운 느낌이 많이 듭니다. 특히 첫 곡인 'And She Was'는 토킹 헤즈의 특징을 잘 반영한 곡이라 생각하는데 지금도 기분이 '다운'됐을 때 그것을 다시 '업'시키기 위해 종종 듣곤 합니다.
참고로 토킹 헤즈의 곡을 들을 때 마다 강기영과 박현준을 중심으로 펑크를 기본으로 하면서 뉴웨이브, 락, 메탈을 혼합하여 선보여된 국내 밴드였던 삐삐 밴드(혹은 삐삐롱스타킹)가 떠오른곤 합니다. 특히 'Speaking In Tongues' 앨범에 수록된 'Burning Down The House'라는 곡의 기타 리프를 듣다보면 삐삐밴드에서 기타를 쳤던 박현준이 이를 따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록 음악사에서 60년대 주류쪽을 대표했던 밴드가 비틀즈였다면, 비주류쪽은 단연코 벨벳 언더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들이, 이후 록음악계 미친 영향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90년대 얼터네티브, 그런지, 모던 록 그리고 그 이전의 펑크 록 밴드까지 모두 벨벳 언더그라운드에게 두 손을 모아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입니다.
"따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들은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록 밴드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에 속할 만큼 여전히 즐겨듣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자주 찾았던 중고 레코드 전문점에서 우연히 그들의 첫 앨범인 'Velvet Underground & Nico(일명 바나나 앨범)'을 구입한 것이 첫 만남이었습니다. 아마도 팝 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이 매니징을 했다기에 궁금해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만해도 생소했던 그들의 몽환적이고 음울한 사운드에 (과장을 좀 한다면)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지요.
아무튼 제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처음 접할 때만 해도 록 음악을 많이 들었다는 주변 사람들도 이들의 존재를 아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생소한 밴드였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마도 '접속'이라는 영화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이 영화에는 지금 소개하는 그들의 세 번째 앨범에 수록된 'Pale Blue Eyes'가 삽입되어 영화와 더불어 인기를 끌었고, 특히 영화의 주인공과 첫 사랑을 연결해 주는 소품으로 이 앨범이 등장합니다.
사실 이 앨범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실험 정신을 주도했던 존 케일이 빠진 상태에서 제작한 것이기에 제가 들었던 이전 곡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 앨범 중에 가장 편하게 들을 수 있을 만큼 전통적인 록 음악에 가까운 앨범이기도 합니다.
Candy Says와 Pale Blue Eyes 그리고 What Goes On과 Jesus 등을 한 번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당시에는 국내 음반 시장에 직배 체제로 바뀌는 과정이었기에 그동안 발매됐던 레드 제플린 음반들이 다 절판됐습니다. 따라서 사고 싶었던 LP를 구하는데 애로사항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결국 레드 제플린의 총 10장의 정규 앨범과 관련 자료를 모은데 꼬박 1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됐고, 그 기간동안 서울 시내에 다녀보지 않는 레코드 점이 없을 정도였습니다(그 덕에 다른 많은 좋은 음반들도 모았던 시기였습니다).
곡의 끝에 덧붙이는 부분으로 종결부를 뜻하는 CODA(1982)는 앨범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레드 제플린의 해체 후 그들의 미발표곡을 모은 마지막 앨범입니다.
60년대가 비틀즈의 시기라면 70년대는 레드 제플린의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 잘 나가는(?) 록 밴드에게 '가장 존경하는 그룹'을 물어보면 항상 레드 제플린이 언급될 정도로 그들은 70년 대 이후의 하드록이나 메탈의 반면교사라 할 수 있지요.
'Moby Dick' 이후 존 본햄의 유일한 솔로 드럼 연주곡인 'Bonzo's Montreuk'와 그룹 초창기에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추구했던 블루스와 소울이 결합된 형태의 'I can't quit you baby'와 'We gonna Groove',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의 하드록 창법의 전범을 보여주었던 'Wearing and Tearing' 등 이 앨범을 통해 그들의 숨겨진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전 앨범 중에서 뺄수 있는 곡이 무엇이 있을까요? 레드 제플린의 전 앨범을 모두 Masterpiece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화가였지만 상징과 신화를 다루지 않았으며 보이지 않은 것을 꿰뚫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현실을 주의 깊게 통찰함으로써 얻어진 본질을 단지 충실하게 전달할 뿐이었지요.
"우리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에게 그 비밀을 인도해 주었던 사물의 리얼리티를 떠나서는 안된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이 그림은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작품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입니다. 분명히 파이프로 보이는 그림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파이프일까요? 아닐까요? 미셸 푸코가 지적한 것처럼 말, 그림, 대상은 없으며 아무 것도 재현되지 않는 '어느 곳에도 파이프가 없다'라는 '언표'만 존재하는 무미건조한 공간일까요?
우리는 대상과 언어사이의 관계 부재를 설명하기에 앞서 왜 그래야만 하는지 설혹 그 이유마저도 부재한다고 해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푸코가 말하는 ‘언표’에 대한 개념은 아래 글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툴루즈 로트렉의 '물랭루즈에서'라는 그림입니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1892년 작품입니다. 그는 19세기 말 컬러 석판 인쇄술 분야를 개척했고, 현대적인 광고 전단지와 포스터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프랑스 화가입니다.
툴루즈 로트렉은 천성적으로 152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은 키에 기형적인 외모를 타고 났기에 불우한 생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단지 백지와 싸울따름이다"라고 할 정도로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데만 열중했던 그는 한줌의 향락과 고독감을 달래기 위해 모여드는 물랭루즈의 군중들을 통해 인간들의 속성과 삶의 본질을 깨닫습니다.
평생 신체적 불구로 인해 뭇 여성, 심지어 창녀들에게 조차 기만당했던 툴루즈 로트렉. 그는 오히려 그런 여성들을 화폭에 담으면서 세상에 대한 우울한 시선, 비극적인 냉소주의를 표현한 것이지요.
그리고 생을 마감하면서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남깁니다.
"어머니! 진정으로 제겐 당신 뿐이었습니다"


